기후 위기와 정치적 전환

기후 위기와 정치적 전환

세종여성 0 67

   자연과 세계에 대한 우리들의 앎과 이해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정치적 방식을 결정한다. 설령 지금의 우리가 석탄이나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로 공급되는 에너지 덕분에 추운 겨울 따뜻한 난방을 제공받고, 걸어가기 힘든 먼 거리를 자동차로 이동하며 편리함과 쾌적함을 누리고 있다 해도 그러한 화석 에너지가 수십 년, 수백 년 사라지지 않는 온실가스를 만들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키고 인류의 생명까지를 위협하게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면 먼저의 편리함과 쾌적함은 오히려 커다란 불안과 불편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 것이다. 우리의 현재가 진정 불편하고 불안하다면 이러한 현재를 그대로 지속시키기 위해 애쓸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는 더욱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으로 현재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이야말로 진정 정치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기후 위기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을 정치적 변혁의 필요성으로 연결시키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사용하는 에너지와 내가 버리는 일회용 쓰레기들, 내가 구매하는 상품들과 내가 향유하고 있는 모든 생활 속의 편의들이 곧 나의 정치적 생활 방식을 규정짓고 있다는 사실, 내가 속한 사회와 공동체의 공통적인 약속 및 규범들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기후 위기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은 실현될 수 없는 채로 남게 될 것이다. 현재 우리의 생계를 가능하게 하는 많은 삶의 방식들이 지구온난화와 기후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 한다면, 우리의 그러한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새로운 정치적 합의와 새로운 생활 방식의 모색에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을 관찰하고 인식한 이래 20세기는, 인간 활동의 영향이 지구라는 공간의 이전과 이후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존재론적, 인식론적 균열을 일으킨 시대이다. 산업혁명과 더불어 인류가 화석연료를 대규모로 사용하게 되면서 인간이 기후 변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지구 시스템 과학자들에 따르면 지난 1만 년 동안의 장기적인 기후 안정기에 해당하는 홀로세 이후 거대한 가속도의 시대라 불리는 새로운 지질시대가 도래한 것은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던 18세기 말이 아니라 1945년경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해진다. 클라이브 해밀턴Clive Hamilton인류세(Anthropocene)’라 불리는 이 새로운 지질학적 세(Epoch)가 이전의 다른 모든 시대들과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르며, 1945년은 유구한 지구 역사에서 과거와의 단절을 보여주는 경계선이라고 말한다. 인류세는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에 의해 2000년에 처음 제시된 용어로 지구의 전체 역사를 나누는 지질 연대표에 새로이 추가되어야 할 지질시대의 이름으로 제안된 것이다. 인류세라는 용어는 지구 시스템(Earth System)’이라는 새로운 연구 대상에 적용되는 개념인데, 지구 시스템은 1980년대 이후 지구 시스템 과학의 출현과 더불어 등장했다. 지구 시스템 과학은 기존의 국지적인 의미의 생태학을 넘어 지구과학과 생명과학을 융합하는 전체론적 접근 방식을 제시하는 과학 분야이다. 지구 시스템 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지구는 단순한 부분들의 합이 아니라 복잡하고 진화하는 단일한 시스템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지구는 행성의 중심핵에서 대기, 달에 이르기까지 서로 연결된 주기와 힘에 의해, 그리고 태양의 에너지 흐름에 의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상태에 놓인 전체로서 간주된다.

   인류세라는 개념이 지구 시스템 개념과 연관되어 있다 함은 인류세가 단지 인간에 의한 부분적이고 국지적인 자연 생태계의 가중된 혼란을 일컫는 것이 아닌, 지구 시스템 전체의 균열을 의미하는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단절을 가리키고 있다는 뜻이다. 만일 인류가 자연 생태계에 특정한 영향을 끼치게 된 시대를 인류세라는 용어로 이름하게 된다면 인류세는 인간이 식물과 동물을 길들이던 아주 태곳적부터 해당될 것이다. 이와 달리 지구 시스템 과학과 더불어 등장하게 된 인류세라는 개념은 전통적인 과학에서 이야기되던 인류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과는 뚜렷이 구분된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이 거주하는 지구 간의 단순한 상호 관계를 넘어, 지구에 대한 인간의 영향이 후대에도 계속해서 지금과 같은 방향과 속도를 그려도 좋은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다시 말해 인류세라는 균열은 인류에게 과거와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정치적 사유와 성찰을 요청하고 있다. 인간의 의지와 욕망, 인간의 자유와 책임의 문제를 둘러싼 새로운 정치적 사유와 실천의 가능성이 모색되어야 함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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