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민주적 노동과 성 억압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의 말에 따르면, 모권적인 원시인들의 자연스런 도덕은 우리 시대의 도덕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 그들에게는 강간이나 치정살인 등 성적인 비사회성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라이히는 엥겔스의 말을 빌려, 강제적인 일부일처제는 한 남성에서 그 남성의 아이들에게 부를 물려주기 위한 욕구로부터 발생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강제적인 일부일처제적 결혼과 가부장적 가족의 유지를 위해 성억압을 필요로 하는 권위주의 사회에서는 성빈곤과 노이로제, 도착과 치정살인 등 다양한 성문제뿐 아니라 개개인들이 지닌 노동능력의 왜곡 및 저하 역시 두드러진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국가, 교회, 기업 안에서의 위계제로 연장된다. 성을 부정하고 억압하는 기제는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쥐고 있는 사회 집단의 요구와 맞물려 있고, 이러한 요구는 권력을 보장하고 강화하기 위해 다른 구성원들에 대립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유년기에 경험하게 되는 성억압과 성생활의 강제적 규제는 대중 개개인의 성격구조 속에 지배적인 권위주의 체계를 내면화시키고, 욕구로부터 발생하는 긴장과 만족 사이의 균형을 잃어버리게 함으로써 도착적인 성적 충동을 발생시킨다[1].
라이히에게서 성적 욕구는 노동에의 욕구와 분리되지 않는다. 노동의 조건과 환경들이 보다 자유롭고 민주적으로 변화할 때, 특정 권력 집단에 의한 성적 억압은 사라지고 노동은 부담스런 의무가 아닌 유쾌한 욕구 충족의 과정으로 경험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시대의 노동은 생계 유지를 위한 의무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강제적인 의무 사항으로 부과된 노동은 노동자의 생물학적 쾌락욕구에 대립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그에 따라 자유스러운 노동을 통해 획득해야 할 합리적 사고와 자연스러운 사랑의 과정, 그리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노동의 지평에서 사라진다. 라이히가 말하는 노동민주주의는 노동의 조건과 형태가 노동에 대한 욕구와 일치되는 상태, 삶의 즐거움과 노동 사이에 어떠한 적대도 발생되지 않는 상태이다. 성적 에너지와 노동 에너지는 동일한 생물학적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까닭에, 자신의 노동 활동에 대한 자율성을 상실한 개인은 자신의 성적 충동을 조절할 수 있는 자율성 역시 상실한다. 여성과 아이들로부터 자신의 성적 활동과 생식에 대한 자유로운 결정권을 박탈하는 가부장제 사회는 개인들에게 부당한 권위를 내면화하고 그러한 위계를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종속을 더욱 공고히 한다[2].
직장 안의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문화는 상사나 부하직원, 동료들 간의 정서적 관계를 원만히 하고 직장 밖의 인간 관계로까지 이어져 가족이나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의 애정어린 상호 작용을 가능케 한다. 수직적이고 강압적이며 규격화된 일터 안에서 신체와 정신을 결박당한 채 장시간 동일한 일을 되풀이하며 자유로운 욕망과 에너지를 억압하고 있는 상황에서라면, 그러한 사회 안에서 건강한 성적 관계 대신 매매춘 행위와 포르노 산업, 성추행과 성폭력이 성행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공통의 사회적 필요를 넘어 특정 계층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강제된 노동은 민주주의의 것이 아니다. 그러한 불필요하고 비민주적인 노동은 노동자에게서 노동이 주는 즐거움과 노동 이후에 만끽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앗아가고 노동자의 욕망을 폭력적인 것으로 변화시킨다. 그리하여 그로부터 비롯된 불평등으로 인해 그것이 자본가에 의한 것이든 노동자에 의한 것이든 성적 착취와 억압 또한 사회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상 경직되고 관료화된 자본주의는 전체주의의 모습과 구분되지 않는다. 다수의 노동자들은 매일 오전 9시에 그들의 일과를 동일하게 시작한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주 5일 내지 6일을 보내고 같은 시각에 점심을 먹고 퇴근을 하며 더욱 나쁜 경우에는 야근이 길어지고 휴가도 줄어들어 직장에서 온종일을 보낸다. 장기간 이러한 기계적이고 피로에 가득찬 리듬 안으로 신체를 끼워 맞추며 에너지를 소진시키다 보면 성적 에너지는 자유롭고 건강한 방식으로 방출되지 못하고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양상으로 변질된다. 군대와도 같은 한국의 수직적 직장 문화와 남성 중심의 폭력적 성 문화 사이에는 모종의 연관 관계가 놓여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