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이 또 다른 폭력이 되지 않으려면

페미니즘이 또 다른 폭력이 되지 않으려면

세종여성 0 70

이성애자를 중심으로 남성과 여성으로 이분화되고 고정화된 사회적 성 정체성의 제도화는 동성애자나 양성애자그리고 양성 중 어느 한쪽만으로 구분될 수 없는 다른 유형의 성소수자들에게 또 다른 폭력으로 작용한다가령 하나의 신체에 두 가지 성적 특징을 모두 지니고 태어나는 소수의 아이들은 사회가 정상적 모습이라고 전제하는 이분화된 성적 제도와 사회적 장치들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끼워 맞추기 위해 고통스러운 신체적 수술이나 일생 동안 반복되는 정신적 피해를 감내해야 한다. 2018년 네덜란드 재판부는 출생 신고 시 부모가 아이의 성에 남성이나 여성이 아닌 제3의 성을 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한국 사회에서처럼 동성애자들의 결혼이나 육아에 관한 권리를 마치 이성애자들의 허락을 받아야 성립 가능한 문제처럼 인식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성적 차이와 다양성을 충분히 긍정하지 못하는 폭력적 구조 위에 기반해 있음을 드러낸다이성애든 동성애든 어떠한 사랑의 모습을 폭력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타인의 욕망과 의지를 거스르면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지배적 욕망과 의지를 관철하려는 행위에서 비롯되는 것일 뿐, 그것이 이성 간의 관계이든 동성 간의 관계이든 그 성별에 따라 달라지는 사항이 아니다동성애자들의 사랑이 그들 중 어느 편에도 그들의 생명과 건강에 어떠한 폭력성도 전달하고 있지 않다면, 그러한 경우 그들의 사랑이 이성애자들에 의해 그 여부가 허락되어야 하거나 인정되어야 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그 누구도 자신이 다수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사랑을 허락하거나 금지할 권리를 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성의 구분은 자연으로부터 탄생된 모든 생물의 생물학적이고 필연적인 구분 방식이 아닐뿐더러 모든 인류의 문화가 지니고 있는 보편적 가치 체계도 아니다. 16세기 초 라틴아메리카 지역을 정복하러 온 스페인 사람들은 그 곳에서 여장을 하고 여자 일을 하며 남자들과 성관계를 맺는 남성 원주민들을 목격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1]또한 북아메리카의 여러 인디언 문화에서는 남자의 역할과 여자의 역할이 결합된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닌 또 다른 젠더를 지니는 이들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간다이들을 단순히 남성에서 여성으로혹은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을 바꾼 경우라고 범주화시키는 것은 우리가 속한 두 가지 성 체계의 틀 안에서 그들의 문화를 다시금 왜곡시켜 이해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대부분의 북아메리카 인디언 문화에는 여성과 남성을 포함하여 서너 가지 젠더가 공존한다고 한다또한 그들 문화에서 성관계는 단지 신체적 성이 아닌 젠더에 따른 차이를 중심으로 정의되기 때문에, 우리가 단지 신체적 성을 기준으로 동성애라고 부르고 있는 범주를 북아메리카 인디언 문화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어찌 보면 각 개인이 저마다 다르게 지닌 여성성과 남성성의 차이들을 모두 존중한다면 성이란 것 역시 개인들의 수만큼이나 무수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그러한 점에서 본다면 단지 두 성과 두 젠더만을 인정하고 그러한 기준에서 벗어난 경우는 모두 비정상적이고 자연적이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문화적 폭력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만일 페미니즘 운동의 궁극적 지향점이 여성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에 대항하고자 하는 것이라면여성이라는 이름이 남성에 뒤따른 또 다른 폭력적 다수를 가리키는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기존의 이성 체계에 불편함을 느끼는 성적 소수자들의 목소리 또한 묵살하거나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또한 여성이 여성 스스로의 폭력을 문제 삼지 아니하고 여성 내부에서마저 소외 당하거나 차별 받는 장애인전과자비정규직 노동자미혼모다문화 가정의 여성 등에 대한 폭력적 시선과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면, 그러한 페미니즘 운동으로 인해 여성의 권리가 옹호되고 신장된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더 많은 나의 권리를 요구하기란 쉬우나 사회의 관심으로부터 배제된 다른 이들의 권리를 위해 연대하는 일은 분명 더욱 커다란 노력을 필요로 한다하지만 여성 스스로가 궁극적으로 폭력의 지배로부터 한 걸음 더 멀리 물러설 수 있는 길은 폭력적 양상을 띤 남성의 지배권을 넘겨 받거나 탈취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또 다른 여성에게도, 성소수자에게도나아가 자연 전체에도 그와 같은 폭력과 차별을 되풀이하지 않는 데에 있을 뿐이다.


[1]사브리나 P. 라멧 편여자 남자 그리고 제3의 성, 318쪽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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