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 사회적 위계화와 자본 욕망

학교 폭력, 사회적 위계화와 자본 욕망

세종여성 0 58

학교를 자퇴한 한 아이는 성공의 꿈을 심어주는 상담 교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성공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저소득의 비정규직 부모의 아이들에게 학교는 가르친다. 너희의 부모처럼 살지 않으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고. 학부모들은 생각한다. 대학의 서열은 졸업 후 나의 아이에게 돌아오는 자본의 크기를 결정하고 그 자본의 크기는 다시 아이의 행복을 결정한다고. 하지만 정작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일까?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먼저 살아남는 법? 이러한 것을 가르치는 것이 진정 교육이란 것이 될 수 있을까?

교육이란 무엇을 위해 필요한가? 교육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어떠한 사회를 만들며 살아가라고 가르쳐야 하는가? 남들을 밟고 올라서서 홀로 살아갈 수는 없다. 잘 산다는 것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다. 나의 소질과 재능은 다른 이들을 지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와는 소질과 재능이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교육의 본질을 망각한 성적과 입시 위주의 교육 방식은 마치 교육의 목표가 입신과 경제적 성공에 달린 것인 양 교육의 의미와 가치를 왜곡한다. 그러한 방식으로 정향된 교육을 통해 육성된 엘리트들은 당연한 노릇이지만 사회 여러 분야의 고위직에 올라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힘쓰기보다는 먼저 자신에게 돌아오는 고소득과 특혜를 누리기 위해 분투한다.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개인의 부와 명예를 위해 명문대 입학을 권장하거나 강요할 때 사회의 위계화는 지속되고 사회 전체의 모습은 평등과는 멀어지며 폭력은 누구에게나 더욱 친숙한 것이 된다. 사회 전체와 학교 교육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학교 폭력 문제를 학교에 부적응하는 몇몇 학생들의 개인적 일탈로 치부하려는 해결 방식은 거의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가해 학생은 학교에서 배제되어야 할 처벌의 대상으로, 피해 학생은 심신에 장애를 입은 상담과 치료의 대상으로 이분화하는 것에 만족하고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이 동시에 속한 학교의 모습을 바꾸는 일에는 아무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면 학교는 배움의 공간이 아닌 사법기관이나 병원과 구분되지 않는 이상한 장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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