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에 대한 단상

'경쟁'에 대한 단상

세종여성 0 64

경쟁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목적물을 향한 상호 투쟁의 의미를 내포한다경쟁은 또한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거나 자신의 역량을 증대시키기 위해 타자의 생명과 안위를 돌보지 않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동물의 세계에서 한정된 먹이를 획득하기 위해 굶주린 동물들은 경쟁의 관계에 돌입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모든 동물들이 이와 같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가는 탐구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가령 같은 무리의 동물들은 자신들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공동으로 먹이를 포획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무엇보다 인간이 여타의 동물들과 다르게 고유한 의미의 인간일 수 있는 까닭은 생명의 유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한정된 조건 아래서도 타자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처럼 여기고 돌볼 수 있는 능력을 탁월하게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현대 사회 안에서 개인들 간의 경쟁은 주로 지위나 금전적 이해를 둘러싸고 벌어진다대학 서열화와 입시 경쟁이 공고한 한국 사회에서라면 경쟁적 태도는 매우 어린 시기부터 형성된다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입시 경쟁은 배움의 공간인 학교와 가르침의 활동인 교육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20세도 채 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한국 청소년들의 수가 부지기수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경쟁이 인간의 삶을 발전시킨다는 적자생존의 논리가 얼마나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인 것인가는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급물살을 타고 전파된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2000년대 이후 학교 생활을 경험한 학생들은 사실상 연대와 협력의 배움을 체득할 교육의 기회를 대부분 상실당했다신자유주의적 교육의 일차적 목적으로 당연시된 것은 자기계발을 통한 개인적 역량의 증대와 그에 수반되는 보상의 획득이었다. ‘개인만이 있을 뿐 사회란 것은 없다고 한 영국의 신자유주의 정치가 마가렛 대처의 말처럼한국 사회에 남게 된 것은 철저한 개인주의와 타인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자기계발 및 자기투자를 통한 끝나지 않는 경쟁뿐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가 저성장 시대를 맞이하면서 청년 실업률은 급격히 증가했다. 2019년 말 유행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청년들의 고독과 고통을 더욱 심화시켰다실업의 고통과 경제적 빈곤 속에 놓여진 많은 청년들이 자기계발과 경쟁의 막다른 골목 앞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소위 공정한 경쟁에 대한 예찬은 경쟁이 본질적으로 갖는 본래의 의미를 은폐시키고 마치 공정한 경쟁이 추구되고 나면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처럼 우리를 현혹시킨다그러나 우리는 경쟁적 태도 안에 공공의 이익에 대한 정의로운 삶의 태도가 모순되지 않게 양립될 수 있는가를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한다출발선이 같은 트랙에서 두 선수가 달리기 경쟁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달리기에 임하는 두 선수의 경쟁적 태도는 다른 이보다 앞서 달리려는 태도이다여기에는 자신이 상대방보다 더 빨리 달려서 더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야 한다는 욕망과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이것은 어디까지나 상대방과 같은 속도로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하려는 의지나또는 상대방보다 느리게 달려도 만족할 수 있는 욕망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어떤 것이다경기 후에 만일 두 선수에게 결과에 따라 차별적인 어떠한 보상이 주어진다면 그 때에 우리는 더더욱 공정함의 의미가 신비한 외피를 입고 재탄생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차별적인 보상 자체가 경쟁의 공정성을 증거하는 결과물로 간주되는 것이다우리가 일상 속에서 체험하는 경쟁이란 대부분의 경우 경쟁 후의 한정된 보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활동인 경우가 많다우리가 경쟁을 당연시하는 순간 우리는 보상을 공평하게 나눌 수 있는 가능성이나 아니면 애초에 아무런 보상을 상정하지 않아도 되는 가능성을 모두 박탈당하게 된다.


공정한 경쟁은 경쟁에 참여하는 참여자들의 동일한 조건을 전제한다그러나 엄밀히 말해 어느 누구도 동일한 신체적정신적 조건을 지니고 있지 않다또한 어떠한 개인도 그 개인을 둘러싼 환경과 사회를 떠나서는 존재 불가능하므로 개인적 조건 외에 사회적 조건까지를 고려한다면 어느 누구도 동일한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조건을 영위한다고 말할 수 없다. ‘공정한 경쟁이라는 슬로건은 경쟁이라는 삶의 방식이 부차적이거나 사소한 것으로 취급될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시스템의 모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확대시킨다사실상 경쟁이란 자본의 독과점과 미완된 분배 구조로부터 연유하기 때문에 공정한 경쟁이 추구될 수 있다는 논리는 부지불식간에 자본의 본원적 축적의 역사적 과정을 은페하거나 무()로 돌리는 효과를 낳는다각자의 삶이 개인들 간의 경쟁에 내맡겨질 때 경쟁의 끝에서 발견되는 것은 결국 승자와 패자의 구분으로 말미암은 사회적 분열과 해체다. 더욱이 그것이 공정한 경쟁이라 불리었다면 경쟁의 결과 패자에게 아무런 사회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그것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될 것이고, 그 결과 그들이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한들 사회적 관심의 정도는 그다지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OECD 회원국 중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새로운 시스템의 모색을 가로막고 있는 무비판적이고 무반성적인 경쟁 이데올로기의 수용과 확장은 다시금 경계되고 숙고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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