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를 폭력배라 부르는 정부

노동자를 폭력배라 부르는 정부

세종여성 0 51

보수정권의 집권 이후 언제나 그러했듯 천안함 사건이나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이태원 참사와 같은 대형 안전사고가 또다시 벌어졌다. 재현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고공 농성중인 노동조합 간부를 진압봉으로 후려치는 경찰의 모습이 재등장하고 노동자들의 시위 진압 현장에는 캡사이신 총까지 다시 선보였다. 고 백남기 농민의 무참한 희생에 대한 반성은 어느새 온데간데 없고 물대포를 쏠 수 있는 살수차 동원 계획을 묻는 질문에 경찰청장은 그것 역시도 함께 고려중이라고 답한다. 


노동자의 요구를 경청할 줄 모르고 노조와의 대화에도 협상에도 지극히 무능한 대한민국 정부의 모습을 그간 우리는 여야 정권을 막론하고 지긋지긋하게 보아왔다. 노동자의 지위에 놓인 국민 다수의 삶이 보다 안정되고 행복해질 수 있으려면 사용자와의 임금 협상에서 열세에 놓여있을 수밖에 없는 노동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대변할 수 있는 정부의 능력과 노력은 참으로 필수적이다. 


노동자의 요구와 기업 경영진의 이해가 상충될 경우 정부에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자세는 국민의 다수인 노동자의 편에서 사용자를 설득하고 그 둘 사이를 지혜롭게 중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실로 유능한 모습의 정부이고, 나아가 나라의 일을 전부 기업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는, 정부란 것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윤석렬 정부가 노동자들에게 보이고 있는 행태는 정부의 올바른 소임을 내던지고 자신들의 무능함을 만천하에 폭로하며 그저 야수 같은 몽둥이질만을 일삼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노조의 폭력성을 운운하며 노동자들을 마치 폭력배나 진배없는 이들로 칭하는 정권의 언설이 여과없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 그러한 언론들을 접하는 일반 국민들은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하고 불안정한 노동 조건이 아닌, 노조의 불법성과 폭력성에 마치 실질적인 문제의 초점이 놓여있는 것으로 오인하게 된다. 노조에 대한 국민들의 편견과 무관심은 거의 매일같이 발생하다시피하는 근로현장 내 노동자들의 사고사를 한국의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여겨지게 만든다. 그리고 한국 노동자들의 위험하고 불안정한 노동 활동은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는 듯 오늘도 그렇게 계속해서 다시 굴러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한국 사회도 이제는 모든 기업의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를 일정 비율 이상 참여시켜 노동자 역시 기업의 경영권을 실제적으로 분담할 수 있는 방안을 하루 빨리 법제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독일을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들에게 이사회나 감사회 구성원 수의 절반 가까이를 노동자들의 몫으로 할당할 것을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직접 기업의 경영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노동자들 스스로가 자신이 속한 기업의 여러 실제적인 문제들과 발전 방안을 사용자와 함께 숙고하고 협의할 수 있는 가능성과 지평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노조의 존재를 기업의 해충쯤으로 취급하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망각한 처사에 다름아닐 뿐더러 보다 성공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기업의 모습에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일이다. OECD 국가 중 최고의 산재사망율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정부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노동이사제의 신속한 확립과 정착을 위한 노력이지 시위 노동자들을 향한 무능하고 무자비한 몽둥이질이 아니다.


2023년 6월 5일

사단법인 세종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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