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깨웠던 그녀들, 여성운동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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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8 09:23
당시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들은 기독교회관 2층에서 ‘여성단체연합 성고문대책위’를 구성했고, 시민단체, 종교단체와 함께 ‘부천서성고문사건공동대책위’를 꾸려 격렬한 투쟁을 벌이게 된다. 당시 매일같이 성고문·용공조작·폭력정권 규탄대회가 열렸으며, 많은 여성들이 권인숙씨의 재판정에 몰려들어 권씨를 격려하고 지원했다.
1983년 여성평우회 창립 멤버였던 이미경 열린우리당 의원은 “권인숙씨의 성고문 폭로는 군사독재정권의 반인륜성과 야만성을 폭로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독재타도 민주화운동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여성단체와 여성들이 정치변혁의 주체로 참여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듬해인 1987년 1월 16일 서울대생 박종철군이 물고문을 받던 중 사망하는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져간 한 청년의 죽음 앞에 가장 먼저 달려간 사람들은 바로 어머니, 단지 독재에 맞섰다는 이유로 고문당하고 구속된 남편과 자식들을 둔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이하 민가협) 어머니들이었다.
1983년 여성평우회 창립 멤버였던 이미경 열린우리당 의원은 “권인숙씨의 성고문 폭로는 군사독재정권의 반인륜성과 야만성을 폭로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독재타도 민주화운동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여성단체와 여성들이 정치변혁의 주체로 참여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듬해인 1987년 1월 16일 서울대생 박종철군이 물고문을 받던 중 사망하는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져간 한 청년의 죽음 앞에 가장 먼저 달려간 사람들은 바로 어머니, 단지 독재에 맞섰다는 이유로 고문당하고 구속된 남편과 자식들을 둔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이하 민가협) 어머니들이었다.